첫번째 직업을 잡지 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저는 '글쓰는 일'을 하나의 천직으로 삼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처음부터 그러지는 않았겠죠. 인생의 경로가 지속적으로 그쪽으로 유인을 했고 저는 이끄는대로 따라갔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직업으로서의 글쓰기'를 말하자면, 처음에는 밥벌이로서의 글쓰기였습니다. 소위 콘텐츠를 만들어야 월급을 받을 수 있었으니까요.
그러니 처음부터 글쓰기가 천직이라고 말할 수는 없었던 겁니다. 어쩌다보니 그렇게 된 셈이죠. 잡지사를 창업하고 운영하면서 '빼박으로' 소명의식을 갖게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콘텐츠 사업은 사회 문화 산업에 일조한다는 소명 의식이 없으면 사실 너무 힘들고 지치는 일입니다. 매출을 일으켜 수익을 만들기가 여간 쉽지 않기도 합니다.
소명의식을 떠나 글을 좀 쓴다는 것은 여러모로 쓸모가 많습니다. 사업을 운영하는 데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글을 조리있고 설득력있게 쓴다는 것은 우리의 고객을 대상으로 하여 영업을 하든, 마케팅을 하든 필요한 역량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주제에 따라 글을 쓴다는 것 이상으로 효용이 있다는 거죠.
병원을 운영하는 한 후배는 자신의 분야에 대한 책을 출간했습니다. 그의 표현대로 졸지에 작가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작가가 된 기분이 어떠냐고 물었는데, 점점 재미있어진다고 답했습니다. 고된 하루를 보내고 집에 돌아오면 곧장 컴퓨터를 켜서 글을 쓰는 루틴을 유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첫책이 나온지 반년만에 두번째 책 발간 계약을 했다고 말이죠.
놀란 표정을 짓는 저를 보고는, 물론 처음에는 너무 힘들었다고 하네요. 힘들고 외로웠다고 말이죠. 쓰고 싶은 내용은 있는데, 그걸 풀어내는 게 여간 쉽지 않았다고 합니다. 단어가 그냥 흘러나오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고 해요. 그러다가 무조건 앉아있는 습관을 만들었고, 잠자리에 들기까지 글을 쓰는 루틴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글이 자연스레 나올때까지 그저 앉아 있는 시간을 확보한 거죠. 그런 시간이 길어질수록 어떤 형태의 문장이든 쏟아져나오는 것을 경험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쏟아놓고 난 다음, 그 다음은 마음에 들때까지 다시 쓰고 고쳐 쓰게 되더라고요." 그는 이제 전문 작가가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자주 글이 스스로 움직이면서 만들어가는 것을 경험했는데, 그게 가장 신기했어요."
저는 이것이야말로 글쓰기의 본질임을 깨달았습니다.
기자 일을 반평생하면서 글 쓰기는 게 가장 익숙한 행위지만, 그렇다고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기사를 작성할 때 글이 잘 풀리면 스스로 재능이 있는 게 아닌가 싶다가도 실마리가 도무지 풀리지 않으면 이 일을 선택한 자신이 죽도록 미워지는 겁니다. 이런 오르락 내리락 부침은 글을 쓰는 내내 출몰했습니다.
그래서 저희같은 사람은 글이 잘 만들어지지 않을 때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두어야 합니다. 일단 멈춥니다. 딴짓합니다. 작가들은 주로 산책을 하거나 동적인 활동을 하기도 하죠. 저의 사수는 담배로 답답한 마음을 달랩니다. 뻑뻑 빨아들이면 글이라도 풀릴까 싶겠지만, 그럴수록 담뱃갑은 급속하게 홀쭉해지기만 하죠.
하루키같은 작가는 이런 소모적인 활동을 방지하기 위해서 특정 시간동안 무조건 글쓰는 시간표를 거의 평생 유지해왔다고 합니다. 글이 되든 그렇지 않든 책상머리를 지키고 있는 거죠.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고 음악 듣고 TV를 틀고 SNS를 하는 순간, 글은 더욱 멀리 벗어날 뿐이라는 것을 그는 진작에 깨달았을 것입니다. 글쓰기는 예술이 아니거든요. 영감이 와야 쓴다는 사람은 글쓰기를 잘 모르고 하는 소리입니다.
그럼에도 글쓰기는 스타일이 있습니다. 개인의 기질이나 성향에 따라 행태는 다양하게 나뉩니다. 저에게 글쓰는 스타일을 묻는다면, 전체적인 글의 구성을 한번 정리하면서 방향성이 잡히면 바로 쓰기 시작합니다. 글의 구성이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에 이면지에 먼저 설계를 자주 그려두고는 합니다. 어떤 내용을 넣을지 대략 표시도 합니다.
어떤 분은 밤에 잘 써진다고도 하고, 사방이 막힌 곳이라야 글이 된다는 분도 있더군요. 끊임없이 중얼거리면서 입으로 쓰기도 하고, 쓰다가 멈추다가 컴퓨터를 노려보면서 생각에 골똘히 빠져드는 타입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한 번에 초고를 쓴 다음 수정하고, 어떤 사람은 첫 문단을 끝없이 만지작거려야 두 번째 문단으로 나아가기도 합니다.
글 쓰는 스타일이 이렇게 다르지만 모두 공통의 목표가 있습니다. 일단 약속한 분량의 글을 마무리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온라인 환경이어서 분량에 대해서는 그렇게 한계가 없는 편이지만, 보통은 원고지 몇 매 또는 A4 용지로 몇 장 등으로 '써야 할 분량'을 사전에 정해줍니다. 이것 또한 청탁한 분량을 딱 맞추는 타입이 있는가 하면, 철철 넘치게 작성해놓고 '편집담당자'가 알아서 쳐내게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물론 청탁의 테마에 맞춤해야 합니다. '야마'라거나 주제를 세우게 마련입니다. 글의 성격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세상 모든 글은 결국 쓰는 이의 전부가 드러나는 행위입니다. 동일한 주제, 비슷한 구성으로 글을 쓰라고 던져줘도 글은 천차만별 다르게 결과가 나올 것입니다. 결국 글쓰기는 자신의 표현에 다름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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